우리가 만들어갈 공동체
주일 아침,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성도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어떤 분은 한 주간의 무거운 짐을 그대로 안고 오시고, 어떤 분은 감사가 넘쳐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저는 그 다양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자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가 어떤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소망하는 예배를 꿈꿉니다. 예배가 기다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윗은 캄캄한 아둘람 굴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했습니다(시 34:8). 화려한 성전이 아니라 동굴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형편이 어떠하든 주님을 만날 기대로 이 자리에 나아오는 공동체이기를 소망합니다. 토요일 밤 잠들기 전 내일 예배를 기대하는 마음, 저는 그 마음이 우리 교회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를 꿈꿉니다. 누군가 눈물을 흘릴 때 곁에 앉아 함께 울어 주는 사람이 있는 교회 말입니다. 해결책을 주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여기서는 그래도 돼요"라는 한마디가 사람을 살립니다. 다윗의 아둘람 굴에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었던 것처럼, 우리 목장도 있는 모습 그대로 걸어 들어올 수 있는 자리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는 그 모습으로 우리가 제자인 줄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요 13:35).
또한 균형 있는 영적 성장을 꿈꿉니다. 말씀은 많이 아는데 기도의 자리가 비어 있거나, 열심은 뜨거운데 말씀의 뿌리가 얕은 신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나무가 위로 자라는 만큼 뿌리도 깊어져야 하듯, 우리의 신앙도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빨리 자라는 것보다 바르게 자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녀 신앙 전수를 꿈꿉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 부모님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셨지"라고 기억하는 것보다 더 큰 유산이 있을까요. 신명기 6장 7절의 말씀처럼, 앉았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신앙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설교가 아니라 우리의 뒷모습을 보고 자랍니다.
마지막으로, 안팎의 변혁을 꿈꿉니다. 교회 안에서만 따뜻한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안산 이 땅에서 이웃들이 "저 교회 사람들은 참 다르다"고 말하게 되는 공동체 말입니다. 초대교회가 그러했듯이, 우리의 일터와 골목과 이웃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 다섯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예배가 살아나면 사랑이 살아나고, 사랑이 살아나면 신앙이 자라며, 신앙이 자라면 자녀들이 그것을 보고 따라옵니다. 그리고 그런 가정과 목장이 모일 때,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오늘 한 사람의 진심 어린 한 걸음에서 시작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 꿈은 저 혼자의 꿈이 아닙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그림 안에 계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계신 그 자리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디뎌 주시기 바랍니다. 그 작은 걸음들이 모여, 우리가 만들어갈 그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날을 함께 기대하며 오늘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하늘 복 받으세요 담임목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