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피 흘려 사신 교회
설교본문 : 사도행전 20장 24 ~ 28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6년 08월 16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사도행전 20장은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 마무리되는 지점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 전한 고별 설교입니다. 사도행전 전체에서 바울의 설교는 크게 세 청중을 향합니다. 유대인을 향한 회당 설교(13장 비시디아 안디옥), 이방인을 향한 광장 설교(17장 아덴), 그리고 교회 지도자를 향한 이 밀레도 설교(20장)입니다. 즉 이 본문은 사도행전에 유일하게 남은, 바울이 '교인'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지도자들'에게 직접 전한 목양 지침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교회란 무엇인가', '목회란 무엇인가', '건강한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구속사적으로 이 장면은 사도 시대에서 '사도 이후 시대'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입니다. 바울은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25절)라고 말하며, 자신의 부재 이후 교회를 지킬 책임을 다음 리더에게 위임합니다. 사도의 직접 감독이 끝난 뒤에도 교회를 보존하는 두 기둥이 무엇인지가 이 본문의 핵심 관심이며, 그 답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32절)과 성령이 세우신 감독자들의 목양(28절)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본문을 읽는 자리도 정확히 그 자리입니다. 사도가 떠난 교회, 곧 오늘의 교회가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를 묻는 자리입니다.
주님께서 피 흘려 사신 교회를 향한 우리의 마음은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 마음, "나에게는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생명보다 귀한 사명이 있다는 이 고백 앞에서, 우리는 솔직해집니다. 사명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사명대로 사는 건 참 어렵습니다. 전도하러 나가 벨을 누르며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발 아무도 없게 해주세요." 누가 나오면 할 말이 없어서요. 그 마음은 목회자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도망갈 길을 찾습니다. "양이 양을 낳지, 목자가 양을 낳나요?"라는 말에 '아, 나는 안 나가도 되는구나!' 그러나 성경을 펴 보면 예수님도, 바울도 직접 전도했습니다. 전도에 관한 훈련들과 책과 세미나가 그렇게 많은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불순종을 합법적으로 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며 깨달은 진실이 있습니다. 전도는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은혜받은 사람이, 감동받은 사람이 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면 참 좋습니다. 전도하니 복 주시고, 전도하니 은혜 주십니다.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아멘" 하고 한 걸음 내딛는 그 순종 위에,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 신앙은 '죽어서 천국'만이 아니라, 오늘 이 땅에서 천국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 뜻대로 살면 가정이 천국이 되고, 직장에서 그렇게 살면 직장이 천국이 되며, 교회에서 그렇게 살면 교회가 천국이 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 때 마음이 편안하고, 벗어날 때 마음이 불편한 것이 그게 정상입니다. 그 참된 평안이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삶에 복음이 삶으로 강물처럼 흐르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마음, 말씀에 붙잡힌 인생, 그리고 상처 입은 치유자 (말씀)
바울은 교회를 "은혜의 말씀"에 맡깁니다. 사람이 아니라 말씀이 교회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단순합니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것. 우리가 복잡하게 느끼는 것은 순종하기 싫은 마음에 다른 변명과 핑게와 이유들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려는 인생에 왜 이렇게 고난이 많을까요?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그렇습니다. 고난을 통과해 본 사람과 통과해 보지 못한 사람은 말이 다릅니다. 통과해 보지 못한 사람은 힘들어하는 이에게 "너 기도 안 해서 그래, 순종 안 해서 그래"라고 말해 상처를 덧냅니다. 밑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가 있고, 지하인 줄 알았는데 또 땅굴이 있는 그 절망을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고난을 통과한 사람은 함부로 조언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말합니다. "많이 힘들었겠다. 내가 기도해 줄게. 내가 같이 금식하며 기도해 줄 테니, 힘 좀 내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야단치려고, 벌주려고가 아닙니다. 나중에 나처럼 아픈 사람을 만나면 안아주고, 기도해 주고, 사랑해 주라고 예수님 잘 믿는 사람도 고난을 짧게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상처 입은 분노자가 아니라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도록 훈련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눈물이 헛되지 않습니다. 그 눈물이 다른 약한 누군가를 일으키는 손길로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마음, 절제하는 사랑, 그리고 피로 사신 교회 (목양)
바울은 "삼가라, 절제하라"고 당부합니다. 놀랍게도 이 절제는 나쁜 일뿐 아니라 좋은 일에도 필요합니다. 어려운 분들을 돕는 것은 선하지만, 남의 돈을 꿔서, 카드를 긁어서 돕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정말 도우실 뜻이면 하나님이 먼저 채우십니다. 선교도, 교육도, 구제도 다 귀하지만, 어느 하나에만 치우쳐서 균형을 잃으면 교회는 조금씩 쪼그라듭니다. 신앙생활은 교회 생활이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종일 봉사하고 다음 날 직장에서 졸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가 섬기는 사역에는 집중하는데 다른 예배 생활이 제대로 안되고, 직장에서는 지각과 근무 태만이 되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치우침을 싫어하시고, 질서와 균형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아들 예수의 십자가의 피로 사신 곳입니다. 못난 자식도 부모에겐 자식입니다. 손이 잘못하고 발이 잘못했어도, 그 몸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 교회는 비난 대신 기도하는 교회,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는 균형 있는 삶으로 갈수록 잘 되고, 점점 복 받는 믿음의 가정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교회는 무엇 하는 곳일까요? 세상에서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짐을 내려놓고 힘과 용기와 희망과 꿈을 얻는 곳입니다. 예배 오기 전 '이혼한다' 했던 사람이 예배 후 '그래도 살아야지' 하고, '아이를 맡기고 혼자 편히 살겠다' 했던 사람이 '그래도 함께 사랑하며 살아야지' 하고, 부도로 '못 살겠다' 했던 사람이 '그래도 다시 용기 내야지' 하고, 장애 가족 돌봄에 지쳐 '다 포기한다' 했던 사람이 '그래도 가족인데 품고 살아야지' 하는 그런 곳이 교회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살아나면 이 세상 어떤 공동체보다 강력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섬김이, 작은 실천이, 작은 배려가 우리 안산중앙교회를 그런 교회로 만들고, 멀리서 찾아온 이의 가정을 회복시키고, 직장을 살리고, 죽으려던 사람을 살립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피 흘려 사신 우리 안산중앙교회를 참되게 사랑함으로 복음대로, 말씀대로 성실한 삶으로 복음, 말씀, 목양의 사명을 충성되이 섬기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교회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