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하나님나라 나도풍
설교본문 : 사도행전 20장 35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6년 08월 23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하나님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말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남편이 30년 동안 "사랑한다"는 말만 하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확정되지 않습니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천국에서 스피커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수천 년째 외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주시는 방법으로 그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 구절은 "사랑하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으니"까지 가야 문장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주셨고, 만물을 주셨고, 아들을 주셨고, 영생을 주셨고, 풍성한 삶까지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됩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나도풍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미 나누고도 풍성해지는 삶을 우리 안에 넣어 두셨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던 시절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풍성한 만물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관계가 끊어지자 그 삶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어 새 피조물이 될 때, 하나님은 잃어버렸던 풍성한 삶을 다시 주십니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예수님은 구원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풍성함까지 가지고 들어오시는 분입니다.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분명히 있었는데 죄 때문에 하나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모든 복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때 파괴되었던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성품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성품이 사랑이고, 사랑의 확실한 표현이 주는 것이라면, 우리 안에 회복된 성품은 반드시 주는 방식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나눔을 짜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것을 흘려보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나도풍입니다(나누어도 풍성한 삶).
2. 복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둘째, 나누는 삶이 복된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복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가 나누는 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닙니다. (레 19:9~10)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밭 모퉁이는 남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남의 것입니다. 흉년이 들어도, 풍년이 들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 밭을 통해 남을 먹이시는 섭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도 나누면 불안하십니까? 하나님은 이 명령 끝에 못을 하나 박아 두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네 하나님인데 무엇이 불안하냐는 말씀입니다.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또 하나, 나누는 자는 사람을 얻습니다. (잠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물질 5를 주고 물질 50을 받는 것보다, 사람 다섯을 얻는 것이 훗날 훨씬 큰 복이 됩니다. 인색한 사람은 초반에 앞서가는 듯하지만 자기 편이 없어 결국 무너집니다. (전 11:1~2)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혼자 여덟 명 먹을 떡을 어떻게 다 먹습니까. 어차피 썩습니다. 일곱, 여덟에게 나눠 놓으십시오. 인생의 겨울이 왔을 때 그 사람들이 떡 한 광주리씩 들고 옵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께서는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나누었느냐?'를 물으실 것입니다. 복음을 나누고 말씀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물질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가진 부자가 아니라 나눔의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나누고 하나님이 더 풍성히 채워 주시는 기적을 누리시는 경주 최부자 같은 믿음의 거부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