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설교본문 : 민수기 11장 1절 ~ 3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5년 06월 15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 사건 이후 하나님의 큰 용서와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계명을 다시 주시고, 성막 봉헌의 기쁨과 함께 공동체를 새롭게 조직하여 질서 있는 신앙공동체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11장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잊고 또다시 원망의 입술을 열었습니다. ‘다베라’는 “불사름”이라는 뜻으로, 그들의 불평과 불신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온 현장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말을 듣고 계십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귀를 의식하는 데 있습니다. 둘째, 우리의 말은 영적 현실을 만듭니다. 원망은 불행을, 감사는 축복을 불러옵니다(잠 18:21). 셋째, 은혜를 잊으면 불평이 나오고, 불평이 반복되면 불행도 반복됩니다. 결국 믿음이란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이번 특별새벽기도회 기간 동안, 우리는 원망과 불평을 멈추고 은혜와 감사를 기억하며, 믿음의 고백과 긍정의 언어로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말과 마음을 들으십니다. 우리의 입술이 기도의 불씨가 되어, 공동체와 가정, 교회에 은혜의 새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우리의 신앙은?
1. 믿음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믿음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정해주신 위치에 억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질서와 공동체 안에서 그분의 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신앙의 태도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서 바란 광야로 옮겨가는 중, 하나님이 세워주신 진의 편성과 질서를 따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백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영에서 떨어진 곳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내가 좀 자유롭게 살고 싶다, 굳이 남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 이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우리 지파가 가장자리냐”는 불평과 불만, 혹은 공동체를 부담스러워하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 은혜의 자리가 아니라 불평과 원망의 자리였습니다. 이들은 외적으로는 구체적인 불평의 이유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질서와 공동체에 대한 불신과 불순종, 자기중심적 신앙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단순히 노예에서 해방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걸어가며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에서 떨어져 장막을 친 사람들은 은혜만 누리고, 공동체의 짐과 사명에는 참여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광야 여정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하는 길이기에, 떨어져 나간 장막의 삶은 곧 원망과 불평으로 시작되는 삶이며, 그 결과는 심판의 불이 임하는 위험한 자리임을 경고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믿음의 자리, 공동체의 자리, 사명의 자리를 기쁨으로 지키며, 불평이 아닌 순종과 감사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광야는 혼자 통과할 수 없는 길이며, 하나님은 결코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 은혜를 누리고 싶다면, 하나님이 주신 자리에 머물며 공동체와 사명을 위해 헌신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공동체를 통해 섬겨야 합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공동체를 통해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경험한 메추라기 사건은 단순한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섞여 사는 무리들 즉 하나님과 공동체의 마음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이들이 자기 욕심과 불만으로 탐욕을 품고, 이를 통해 공동체 전체에 불평과 혼란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를 주셨으나, 그 욕심이 심판으로 이어졌고, 그곳을 ‘기브롯 핫다아와(탐욕의 무덤들)’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단순한 징계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세는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고, 하나님은 70명의 장로를 세워 그 짐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이때 두 명이 따로 있었지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진중에서 예언하게 하심으로 공동체 안팎 모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이 원리는 초대교회에서도 반복됩니다. 히브리파와 헬라파의 갈등 속에 사도들은 집사들을 세워 섬김을 나누었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더 큰 연합과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하며 교회 공동체에 완전히 속하지 않고 끝에 머물거나, 불만과 비교, 수준 차이로 교회와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믿음의 울타리요, 은혜의 장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공동체 탓으로 돌리기보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연합되어 교회를 위해, 그리고 성도들을 위해 섬기고 헌신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고, 내 신앙 역시 온전하게 세워집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의 여정은 함께 가는 길이며, 섬김과 연합의 자리에 있을 때 욕심이 아닌 은혜와 승리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 오늘날 교회를 떠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나안 성도(안 나가 교인)”라 부르며 교회 밖에서 신앙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이는 민수기에서 진영 끝에 장막을 세웠던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사명의 자리를 회피하고 혼자만의 신앙, 혼자만의 만족에 머무르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오해한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그의 몸으로 세우셨고, 교회는 세상의 방주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낮게 보고, 비난하며, 그 연약함과 부족함을 이유로 원망만 하며 멀리하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유혹에 빠진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짊어지지 않고, 자기만의 신앙을 고집하는 태도는 결국 진영 끝에 머물며 믿음마저 불평과 탐욕으로 물드는 자리로 빠지게 합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불평과 불만이 생길 때, 그 원인이 내 욕심과 딴 마음 때문은 아닌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이기심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만나만으로도 충분한 은혜를 누리는 것이 진정한 믿음인데, 세상적인 만족과 인정, 대접받고 싶은 욕구에 집착하면 결국 신앙의 기쁨을 잃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해 존재하는 곳임을 기억하며, 우리는 순종과 감사, 섬김과 헌신으로 우리 공동체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그 자리에서 함께 동역하는 은혜는 날마다 누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