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스승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설교본문 : 요한복음 21장 15 ~ 22절
설 교 자 : 한승엽 목사
설교일자 : 2026년 05월 17일
설교영상 :
설교요약 :
오늘은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를 가르치고, 품고, 기도해주고, 기다려준 믿음의 스승들을 기억합니다. 교회학교 교사, 목자와 목녀, 어버이들, 직분자, 목회자와 같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한 가지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스승 된 사람은 무엇이 회복되어야 하는가?” “영혼을 돌보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가?” 요한복음 21장은 실패한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의 목양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습니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나는 제자도 아니구나.” 그렇게 무너진 베드로는 다시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포기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그 실패의 자리를 회복의 자리로 바꾸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베드로를 회복시키시며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1. 상처를 회복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는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자기에게 준 상처였습니다. “나는 주님을 모른다.”라는 세 번의 부인은 그의 마음에 깊은 수치와 실패감으로 남았습니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으면 사명이 무거워집니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으면 섬김이 기쁨이 아니라 부담이 됩니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그 상처로 다른 사람을 찌르게 됩니다. 교사의 상처는 아이들에게 칼이 될 수 있습니다. 직분자의 상처는 공동체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목자와 목녀의 상처는 목원들에게 아픔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상처는 자녀에게 대물림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상처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새벽에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모닥불 앞에서, 세 번의 질문으로, 세 번의 사랑 고백을 하게 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을 고백하게 하신 것은 주님의 따뜻한 치유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상처를 사랑으로 꿰매주셨습니다. 여러분, 상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상처를 주님께 맡긴 사람은 다릅니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으면 칼이 되지만, 상처가 회복되면 사명이 됩니다. 내가 아파봤기 때문에 아픈 사람을 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넘어져 봤기 때문에 넘어진 사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내가 울어봤기 때문에 우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사들과 직분자들과 목자목녀들과 모든 성도들이 먼저 주님 앞에서 상처를 회복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상처가 사명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이름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실 때 “베드로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붙여 주신 사명의 이름입니다.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예수님을 처음 만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본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다시 처음 자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시몬아, 다시 시작하자.” “시몬아, 직분보다 은혜를 기억하자.” “시몬아, 네가 무엇을 했느냐보다 내가 너를 불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성도라고 불리는 것만으로도 감격했습니다. 교사로 세워주셨을 때 두렵고 떨렸습니다. 목자로, 목녀로, 직분자로 세워주셨을 때 “제가 무엇인데요?”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름보다 직분이 익숙해질 때가 있습니다. 섬김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중요해질 때가 있습니다. 은혜보다 대우가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하고, 내 수고를 몰라주면 마음이 상합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시몬아.” 우리는 직분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격으로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평가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스승 된 사람은 자기 이름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사이기 전에 은혜 받은 성도입니다. 직분자이기 전에 십자가로 다시 살아난 죄인입니다. 목자목녀이기 전에 주님의 품에 안긴 양입니다. 이 이름이 회복될 때 주존감과 주비량으로 생명력 있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감사가 살아납니다.
3.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양을 맡기시면서 “네가 양을 사랑하느냐?”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목자와 목녀는 목장 식구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직분자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뿌리는 언제나 주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기대만큼 부응하지 못합니다. 기도해줘도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섬겨줘도 당연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랑해줘도 상처 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사람 사랑만 붙들고 있으면 지칩니다. 섭섭해집니다. 마음이 닫힙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면 다시 섬길 힘이 생깁니다. 주님 사랑이 회복되면 다시 교실로 갈 힘이 생깁니다. 다시 목장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다시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생깁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신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질문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러분, 우리는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먼저 주님을 향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으면 사역은 짐이 되고 일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사랑이 뜨거워지면 내게 맡겨주신 십자가는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됩니다.
적용 :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교회를 사랑함으로 교회와 가정과 다음세대를 섬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그리고 베드로가 요한을 보며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관심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사역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인정과 내 수고를 비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러분, 주님께서 맡기신 다음세대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직분자 여러분, 주님의 몸 된 우리 안산중앙교회를 자기를 부인함으로 섬길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목자목녀 여러분, 목장이 힘들어도 주님이 맡기신 양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주님과 교회를 사랑함으로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즐거이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상처가 회복된 사람으로 예배 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름이 회복된 사람으로 겸손의 자리에서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승의 주일을 맞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직 주 예수님만을 따르는 온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